체스키크름로프는 체코 남보헤미아주에 위치한 작은 도시로, 199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습니다. 이 도시는 13세기부터 17세기까지 형성된 다양한 건축 양식의 잘 보존된 구시가지와 성으로 유명하며, 체코에서 프라하성 다음으로 큰 체스키크룸로프성을 자랑합니다. 성은 로코코 양식의 정원과 독특한 ‘즈 크라피토’ 양식의 건축으로 특징지어지며, 역사적으로 여러 가문의 소유를 거쳐 현재는 문화유산으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10월 13일부터 21일까지 다녀온 동유럽 여행기를 싣습니다.
[동유럽 여행일기(2)] 체코 프라하 중앙광장의 ‘천문시계’
체스키크름로프 (Český Krumlov)
체스키크름로프는 체코의 남보헤미아주에 위치한 인구 1만2000여명(2024년 기준)의 작은 도시로 그 가치와 아름다움을 인정받아 199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체스키는 체코어로 〈보헤미아의 것〉을 의미하고 크룸로프는 〈강의 만곡부의 습지〉를 뜻한다. 1920년 이전에는 〈크루마우안데어몰다우〉라는 명칭으로 알려졌으며, 오래된 옛 지도에는 크루마우(Krumau)라고 기재돼 있는 것이 많다.
체스키크룸로프의 구시가지와 성은 13세기부터 17세기에 걸쳐서 형성됐다. 시가지는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 등 다양한 건축물들이 잘 보존돼 있어 동화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체스키크룸로프의 시가지는 블타바강이 편자 모양으로 굽이쳐 흐르고 성에서 바라보는 마을의 붉은 지붕은 더욱 아름답다.
체스키크름로프성, 체코서 두 번째로 큰 성
체스키크름로프성은 체코에서 프라하성 다음으로 큰 성이다. 성이 지어지기 전부터 주민들이 정착해서 살았다. 13세기 중엽 대지주였던 비테크가가 이곳에 성을 쌓으면서 체스키크룸로프 중세마을이 만들어졌다.
성은 1253년 오스트리아의 문헌에 ‘크룸베노베’란 이름으로 처음 언급됐다. ‘굽은 초원’이란 뜻으로 블타바강이 체스키크룸로프를 굽이쳐 흘러가기 때문이다.
13세기 후반 이곳 블타바(Vltava) 강변이 보헤미아 왕국의 중요한 교역로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성 아래쪽에 마을이 더욱 크게 형성됐다.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가문의 소유를 거쳐 1602년 합스부르크 가문의 신성 로마제국 황제 루돌프 2세에게 매각됐다가, 신성 로마제국의 페르디난트 2세 때에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본령인 오스트리아 대공국의 에겐베르크 가문에 양도됐다. 1719년에는 오스트리아의 슈바르첸베르크 가문의 소유가 됐다.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토였으며, 1938년부터 1945년 종전까지는 나치 독일의 지배 하에 있다가 종전 후 다시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토로 편입됐다.
공산당의 지배 하에 있던 시기에 마을의 상당수가 훼손됐지만, 1989년 체코슬로바키아 벨벳혁명 이후 공산주의 정부가 무너지면서 마을의 대부분이 다시 복구됐다.
체스키크룸로프 성은 도시의 규모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체코공화국에서 프라하성 다음으로 성 규모가 크다. 성 내에는 로코코 양식의 정원이 있으며, 성이 지어진 거대한 바위 사이를 가로지르는 망토다리가 있다. 정원은 반 세기 가량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다가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후 아메리칸 엑스프레스의 후원으로 정원의 분수가 복구, 재가동되고 있다.
이 성은 벽돌이나 돌을 쌓는 방식이 아닌 벽 표면에 입체감을 주는 ‘즈 크라피토(Z-Craftito format)’ 양식을 곳곳에서 볼 수 있어 독특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성은 크게 성 박물관, 성 탑, 성 정원으로 나뉘는데,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성 비투스 교회(Kostel Sv. Víta)는 15세기에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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