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취재=김정자·윤석룡 기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아홉 차례 완주한 84세 의지의 한국인이 있다. 강화군 선원면 연동로에 거주하는 한상태(84) 씨가 그 주인공이다.
한 씨의 산티아고 순례는 2016년 강화군노인복지관 영상반에서 영화 ‘버킷리스트’를 단체 관람한 것이 계기가 됐다. 영화에 깊은 감동을 받은 회원들은 산티아고 순례를 함께 떠나기로 뜻을 모았지만, 2017년 출발을 앞두고 모두 계획을 접었다. 결국 한 씨는 홀로 배낭을 메고 스페인으로 향했다.
첫 순례에서 그는 프랑스길(Camino Francés)을 완주하며 순례자 인증서인 ‘콤포스텔라(Compostela)’를 받았다. 외로운 첫걸음은 이후 그의 삶을 바꾸는 새로운 도전의 시작이 됐다.
2020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순례를 잠시 중단했지만, 상황이 안정되자 다시 길 위에 섰다. 2023년에는 르퓌길(Le Puy Way)을 여섯 번째 순례하며 현지 까미노 관계기관으로부터 ‘까미노 전설(Camino Legend)’이라는 호칭을 받았다.
2025년에는 영국길(Camino Inglés)을 순례한 뒤 가장 먼저 도착해 ‘세계 1등 도착’ 인증서를 받았으며, 선착순 10명에게 제공되는 점심 식사 티켓도 받는 기쁨을 누렸다.


올해는 4월부터 6월까지 아홉 번째 순례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번에는 594㎞를 걸었으며, 누적 순례 거리는 7,000㎞를 넘어섰다. 이에 따라 현지에서 ‘순례의 왕(King of Pilgrims)’이라는 명칭을 부여받았다.
한 씨의 인생 또한 한 편의 영화처럼 극적이다.
1942년 2월 10일 일본 후쿠오카에서 재일교포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광복 후 가족과 함께 대구로 돌아와 성장했다. 대구공업고등학교를 1등으로 졸업한 뒤 대구공고에서 기술조교로 활동하다가 철도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철도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며, 이후 육군장교학교에 입학해 소위로 임관했다. 28년간 군 생활을 마치고 중령으로 예편했다.
1997년 강화군 선원면으로 귀촌한 그는 농사를 지으며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그러나 졸음운전으로 인한 대형 교통사고를 당해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 기적적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눈과 귀, 얼굴 등에 큰 부상을 입었고, 지금도 후유증으로 몸이 불편한 상태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불굴의 의지로 재활에 매진하며 하루하루 걷기 운동을 이어왔고, 마침내 건강한 사람도 쉽지 않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아홉 차례나 완주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그의 삶은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불가능이 없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하고 있다.
현재 그는 강화군노인복지관 영상반에서 사진과 영상 제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다음카페 ‘갑비고차’와 ‘행복한 실버들’의 카페지기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강화노인대학을 졸업하며 배움도 꾸준히 이어왔다.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 씨는 내년 4월 2일부터 5월 10일까지 38일 동안 프랑스 르퓌길 800㎞를 걷는 열 번째 산티아고 순례를 계획하고 있다.
한상태 씨는 “걸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이고 가장 큰 축복입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순례길을 걸으며 감사와 희망을 전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84세의 나이에도 쉼 없이 새로운 길에 도전하는 그의 발걸음은 많은 노년 세대에게 깊은 감동을 전하고 있다. 수많은 역경을 이겨낸 그의 삶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넘어, 도전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새로운 내일이 열린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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