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의 봄 일흔의 노을' 표지. 사진=강화군노인복지관 인문학반

시집 『아흔의 봄, 일흔의 노을』은 강화군노인복지관 인문학반 어르신들이 지나온 세월을 정직하게 바라본 기록이자, 한 세대가 걸어온 생의 풍경을 빛바랜 사진처럼 펼쳐 보이는 삶의 문학이다.

이 시집은 단순히 시를 모아 엮은 작품집이 아니다. 인문학반이 10년 동안 꾸준히 써온 ‘삶의 언어’가 처음으로 온전한 시집의 형태로 담긴 결실이며, 24명의 노시인들이 쓴 89편의 작품이 한 권의 책 안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나이 드는 시간을 부끄러움 없이 마주하는 용기다. ‘아흔의 봄’과 ‘일흔의 노을’이라는 제목처럼, 어르신들의 시(詩)에서 나이는 삶을 가두는 울타리가 아니라 살아온 세월을 환히 비추는 별빛 같은 역할을 한다. 작품 하나하나는 긴 인생에서 응축된 단어들이며, 그 안에는 전쟁의 상흔, 가족을 위해 묵묵히 견뎌낸 생계의 무게, 그리고 늦은 나이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존재의 깊이가 가만히 스며 있다.

서로 다른 개성과 삶의 결을 품은 89편의 시는 하나의 주제로 자연스럽게 수렴한다. 그것은 바로 ‘지나온 삶에 대한 성찰’이다. 서정적이거나 담담하거나 때로는 유머러스한 시편들 속에는 ‘나이듦의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조용한 대답이 담겨 있다. 더불어 서양화가 정정신·이향미·김인실의 그림과 한국화가 유인숙의 삽화가 시집의 분위기를 한층 풍부하게 해 주어, 글과 그림이 서로 울림을 주고받는 복합적 예술의 성격을 갖추었다.

생각해 보면, 이 시집이 태어나기까지의 과정 자체가 하나의 감동적인 이야기다. 열 살이 넘은 세월 동안 매주 자리를 채운 어르신들은 ‘나도 글을 쓸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을 넘어 한 줄 한 줄 언어를 붙들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돋보기를 쓰고, 누군가는 관절이 굳은 손으로 연필을 쥐었을 것이다. 그렇게 쌓인 10년의 문장들이 마침내 한 권의 시집으로 묶였을 때, 그 무게는 단순한 종이의 무게가 아니다. 살아낸 시간의 무게이고, 끝내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의 무게다.

옛날에는 문집의 유무가 가문의 품격을 나타냈고, 시집은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위치에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아흔의 봄, 일흔의 노을』은 단순한 지역 문학의 성과가 아니라 어르신들이 생애 후반기에 남긴 문화적 유산이자 기록 문학의 표본이다. 생을 돌아보는 문학은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오랜 세월을 지나온 이들만이 담아낼 수 있는 깊이와 무게가 이 시집에는 존재한다.

이 시집은 독자에게 화려한 문학 기법이나 난해한 사유를 요구하지 않는다. 마음을 천천히 열고 읽을 때, 오래 묵은 삶의 냄새와 따뜻한 인간의 숨결이 잔잔하게 스며든다. 어쩌면 그것이 이 시집의 진정한 힘이다. 가장 평범한 언어로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리는 것, 그것이 노년 문학만이 줄 수 있는 울림이다.

『아흔의 봄, 일흔의 노을』은 한 세대가 걸어온 길을 시로 기록한 귀한 증언이다. 청춘의 기억과 노년의 지혜가 공존하는 이 책은, 누군가의 삶이 사라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시의 힘을 온몸으로 증명한다. 그리고 책장을 덮는 순간, 독자는 자신의 지나온 시간을 조용히 되돌아보게 된다. 이 책은 우리 모두에게 “살아온 시간을 사랑할 것”을 낮고 따뜻한 목소리로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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