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전국민 건강보험 제도가 인구 구조 변화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흔들리고 있다. 초고령사회 진입과 함께 가파르게 증가하는 의료비로 인해, 반세기 뒤인 2072년에는 건강보험료율이 소득의 25%에 달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전망이 나왔다. 이는 월급의 4분의 1을 건강보험료로 내야 한다는 의미로, 사실상의 ‘세금 폭탄’과 다름없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접근성을 보장해 온 ‘K-의료’의 근간이 흔들리는 이 위기는 단순히 먼 미래의 시나리오가 아니다. 지금 당장 구조적 해법을 찾지 못하면 미래 세대는 감당할 수 없는 청구서를 받아들게 될 것이다.
고령인구는 폭증, 진료비는 급증…’밑 빠진 독’ 된 건보 재정
건강보험 재정 위기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명확하다. 바로 ‘고령인구의 폭증’이다.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서면서, 이들이 사용하는 의료비가 건보 재정에 직접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실제로 고령층은 전체 인구의 약 20%를 차지하지만, 이들이 사용하는 진료비는 전체의 40%를 훌쩍 넘는다.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으로 평생 관리가 필요한 인구가 늘고, 고가의 수술이나 장기 요양이 필요한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보험료를 내는 생산가능인구는 줄어드는데, 막대한 의료비를 쓰는 고령인구는 늘어나는 구조적 모순이 심화되고 있다. 이는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아무리 보험료를 올려도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월급의 4분의 1이 건보료로…미래세대 덮칠 ‘재앙적 청구서’
2072년 보험료율 25%라는 숫자가 현실이 될 경우, 이는 국민 경제와 가계에 재앙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예를 들어 월 소득이 400만 원인 직장인이라면, 본인과 회사가 부담하는 총보험료가 100만 원에 달하게 된다. 가처분소득의 급격한 감소는 내수 소비를 위축시켜 경제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릴 것이다. 특히 이러한 부담은 고스란히 미래 세대에게 전가된다. 현재의 낮은 보험료로 높은 의료 혜택을 누리는 기성세대와 달리, 미래 세대는 훨씬 더 많은 돈을 내고도 지금과 같은 수준의 보장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세대 간의 심각한 갈등을 유발하고, 건강보험 제도의 근간인 사회적 연대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이어질 수 있다.
병원 문턱은 낮지만…과잉 진료 부추기는 ‘행위별 수가제’
인구 구조뿐만 아니라 현재의 의료 공급 및 지불 시스템도 재정 악화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의료 행위 하나하나에 가격을 매겨 보상하는 ‘행위별 수가제’는 의사의 재량을 보장하고 신기술 도입을 촉진하는 장점이 있지만, 과잉 진료를 유발하는 고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병원 입장에서는 수익을 위해 불필요한 검사나 처치를 늘릴 유인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수준인 국민 1인당 외래 진료 횟수나 ‘의료 쇼핑’ 현상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지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고민 없이 단순히 보험료만 인상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예방 중심 전환·지불제도 개편…’건강보험 대수술’ 미룰 수 없다
지속가능한 건강보험을 위해 이제는 ‘대수술’ 수준의 과감한 개혁이 불가피하다. 우선, 질병이 발생한 후 치료하는 현재의 시스템에서 벗어나 질병을 사전에 예방하고 관리하는 ‘예방 중심’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만성질환 관리와 건강 증진 활동에 대한 투자를 늘려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을 줄여야 한다. 동시에 과잉 진료를 막기 위해 행위별 수가제를 보완하고, 포괄수가제나 가치 기반 지불제도 등 혁신적인 지불제도 개편을 서둘러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는 본인부담금 조정 등 국민의 부담이 일부 늘어나는 고통 분담이 따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안일한 대응이 미래의 재앙적 청구서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