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 아파도 아플 수 없고 아파서는 안 되는 우리”
책의 첫머리에서부터 강한 울림을 던진다. “퇴직 5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많은 퇴직자들이 “자격증을 따둘 걸”, “수입원을 더 만들어둘 걸”, “관계를 정리해둘 걸”이라고 말한다. 이 짧은 고백 속에는 준비 부족이 불러온 후회의 무게가 담겨 있다. 『현명한 은퇴자들』은 이런 후회를 최소화하고자, 은퇴 이후 삶을 스스로 설계한 사람들의 경험과 그들이 선택한 전략을 담아냈다.
책은 단순한 은퇴 조언서가 아니다. 저자들은 돈·일·건강·여가·관계라는 다섯 가지 축을 기준으로, 실제 은퇴자들의 사례를 분석하고 실행 가능한 체크리스트를 제시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현명한 은퇴자’들은 퇴직 5년 전부터 수입원을 3개 이상 확보해왔다는 사실이다. 어떤 이는 배당주 투자로, 또 다른 이는 전문 강의나 소규모 창업으로 경제적 자립을 준비했다. 이들은 퇴직을 단절이 아닌 또 하나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책 속의 사례들은 단순히 돈을 버는 법에 머물지 않는다. 인간관계와 여가, 그리고 삶의 태도까지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반복된다. 한 은퇴자는 퇴직 후 99%의 인맥이 끊긴 현실을 경험하고서야 관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또 다른 이는 59세에 사업 실패를 겪은 뒤 마음의 지옥에서 탈출하며, 경제적 준비만큼 정신적 회복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은퇴 이후 삶은 결국 돈과 마음, 그리고 사람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책은 또한 구체적인 준비 항목을 실용적으로 제시한다. 퇴직금 관리 전략, 국민연금 최대 수령 방법, 건강보험료 부담을 줄이는 법, 재취업 준비, 실업급여 수급 자격 등 현실적인 조언이 이어진다. 단순히 “열심히 준비하라”는 추상적 메시지가 아니라, 체크리스트로 바로 실행할 수 있는 가이드북에 가깝다. 이런 점에서 은퇴를 앞둔 50대뿐만 아니라 40대, 60대까지도 읽어야 할 책으로 꼽을 만하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인 구절은 “퇴직 후에도 존엄을 지키는 사람은 일찍 준비한 사람”이라는 메시지다. 저자들은 퇴직을 ‘생존의 전환점’이 아니라 ‘삶의 재설계 시점’으로 정의한다. 준비한 사람은 은퇴 후에도 당당히 다음 일을 찾고, 준비하지 않은 사람은 후회 속에서 시간을 보낸다. 결국 은퇴란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현실이지만, 준비 여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삶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현명한 은퇴자들』은 개인적 성찰을 넘어 사회적 메시지를 던진다. 지금 한국의 55~64세는 ‘연금 크레바스(연금 단절 지대)’라는 불안한 세대다. 평균 퇴직 연령은 50세 전후인데, 국민연금은 아직 멀고, 자녀 교육비와 부모 부양 부담까지 짊어지고 있다. KBS 스페셜이 ‘소득 절벽 세대’라 부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책은 이런 구조적 문제를 직시하며, 준비 없는 은퇴는 곧 빈곤과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 책을 덮으며 정리된 과제는 두 갈래다.
우선 개인적 과제. ‘지금 당장 준비를 시작하라’는 것이다. 은퇴 준비는 먼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과제다. 수입원을 다변화하고, 지출 구조를 점검하며, 관계를 재정리하는 일은 더 미룰 수 없다. 은퇴를 앞둔 사람이라면 한 가지 일에만 의존하지 말고, 최소 2~3개의 대체 수입원을 확보해야 한다. 돈뿐 아니라 여가와 건강, 관계를 포함해 ‘삶 전체’를 설계하는 시각이 필요하다.
정책적으론 ‘퇴직 이후에도 일할 수 있는 구조’를 사회가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평균 수명은 길어졌지만 기업의 퇴직 연령은 여전히 50대에 머물러 있다. 연금 개혁, 재취업 지원, 고령 친화적 일자리 확대가 시급하다. 또, 은퇴자들의 관계 단절을 줄일 수 있는 지역 커뮤니티와 사회적 안전망 구축도 필요하다. 개인의 준비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현명한 은퇴자들』은 은퇴를 단순한 인생의 마침표로 보던 시각을 바꾼다. 퇴직은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출발이다. 그러나 그 출발은 준비된 자만이 누릴 수 있다.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시작하라.”
『현명한 은퇴자들』(글쓴이 이범용·최익성, 펴낸곳 파지트, 2만 원)